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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28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나는 퀴리부인이라고 대답했다.
- 2009/05/28 믿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정의는 지켜지지 않는 다는 걸 깨닳다.
- 2009/05/26 노무현, 시대를 함께 했음에 감사합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1989년.
우리 담임 선생님의 과목은 국어였다.
국어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지목 당한 학생들은 누구, 누구 위인의 이름을 댔다.
그러다 나도 지목 대상이 되어 대답을 위해 일어섰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이순신? 세종대왕? 김유신? 링컨? 캐네디?
평소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깊히 생각해본적이 없던 나는 당황 했다.
순간 교실 책장에 위인전이 눈에 들어 왔다.
"퀴리부인이요."
그건 진심이 아니였다.
그 후로도 나는 한참동안 존경하는 인물이 없었다.
선생님도 교수님도 유명한 문학가, 사회운동가 그들의 정신은 좋아 했지만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2002년, 어느 TV 연설을 듣고 난 후부터 내 마음속에 조용히, 그러나 아주 강하게 자리잡던 인물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 아니 어제도, 또 그 전에도 나도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있었다.
이젠 누구라도 내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노무현이요."
2009년 05월 23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칠일째 잠을 설치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속에 나타나 내게 말을 거신다.
꿈속에서 의식적으로 "돌아가셨구나" 알게 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가슴 한켠이 아려와 다시 잠들기 어렵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 심장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음을 느낀다.
' 투표만 열심히 한다고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다.
92년이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였을거같다.
대선 준비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던 때다.
그 때 사회선생님이였는데 그 중 유력한 후보였던(늦은 봄이 였으니 최종 후보등록을 하지 않은 상황) 김대중에 대해 이야기 주었다.
그 시대만 해도 민감한 사회분위기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특정 후보에 대해 수업시간에 이야기 해서는 안되는거였다.
김대중이 어쩌가 감옥에 가게 됐고 감옥에서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등을 10여분 정도 말씀을 하셨다.
그 때만해도 언제 수업 끝나서 집에가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차 있던 때라 크게 관심있게 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독서를 했는데 교도소 도서관엔 더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외부에서 책을 많이 들여와야 했다는 이야기다.
김대중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 그러면 똑똑하겠다. 그 때의 생각 전부다.
그 해 대선은 김대중은 낙선하고 김영삼이 당선 됐다.
시간이 흘러 내가 23살이 되던 해에 나는 첫 투표권을 갖게 됐다.
군대에 있었으로 부재자 투표를 해야 했다.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97년 대선이였다.
우리 내무반은 14명이 생활을 했는데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나)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특이하게 병장 중엔 부산, 대구 사람이 많았고 상병 중엔 광주, 전주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새벽까지 잠을 안자고 투표 결과를 보고 있었다는 건 다음 날 아침 점호 때였다.
전라도 지역 고참들이 많은 갈굼을 당하고 있었다.
우리 부대는 폭력이나 폭언등이 없었으므로 말로만 갈굼을 하지만 전라도 고참들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첫 투표 경험은 지났고 우리나라 민주주의 정부가 첫 시동을 걸게 됐다.
전역을 하고 나는 지방선거를 하게 됐고 국회의원 선거 등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다지 정치엔 관심 없었지만 내가 투표를 거리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했던 이유는 국민으로써 가장 기본저인 참정권을 포기하고 정치인을 욕하는 사람들은 위선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뻔뻔한가.
자기는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팔장끼고 뒷말하는 사람처럼 못나 보이는게 없다.
못나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하루 중 한시간을 기꺼이 투표하는데 썼다.
이번 노무현 前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투표를 잘한다고 내 의무를 다한게 아니라는 걸 깨닳게 됐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며 더 큰 힘이 있어야 한다.
싸워야한다.
"노무현" 그 이름을 알게 된건 아마도 2002년 경선 때가 아닌가 싶다.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며 나태한 삶을 살아가던 나였다.
대낯부터 친구의 집에서 시간을 죽이던 내가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다 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목소리의 첫 느낌.
목소리 정말 크다.
정치가 무엇이고 정당이 무엇인지 도무지 관심 없던 내가 그 목소리를 한참을 듣고 있었다.
그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뇌리에 박힌다.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고 끝이 났다.
경선이란 단어도 생소했다.
그래도 얼굴은 몇 번 본듯한 이인제, 정동영, 한화갑 중에 되겠지하며 잊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뉴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라 들려온다.
그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한게 조금씩 "노무현"이란 이름이 머리속에 각인 되어졌다.
정치적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그는 사람을 끄는 마력같은 힘이 있었다.
2002년 대선은 아마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노란색이 그렇게 친숙해던적이 있었을까.
대선자금 국민 모금이란게 역사적 유례가 없었다.
사람들은 지금도 "노사모"하면 추종자들, 집단주의자 쯤으로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노사모" 내에서만큼은 지역주의가 없다는 것을.
경남 출신이지만 경남에서 외면당해야 했던 이유를 사람들은 알까?
노무현이 김영삼의 손을 뿌리치고 진보를 택한 그는 경남에서는 배신자와 같았다.
그런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부산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을 하면서도 그들을 가슴으로 끓어 안았던 진심을 사람들이 조금씩 알기 시작했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서울을 아루르며 대한민국의 지역주의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탄핵 앞에서도 당당했음에도, 그렇게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왔음에도 야당과 언론은 그를 끊임없이 난도질 하기 위해 애썼다.
마약보다 무서운게 "조중동"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백여년 근현대사에서 우리나라 언론이 한 일이라곤 정치꾼들의 나팔수였고 재벌의 하수인이였다.
그런식으로 언론들은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권력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통령도 어쩌지 못할 거대 공룡으로 몸집을 키워 왔다.
조중동이 물은 아래서 위로 흐른다고 하면 국민들은 의심 없이 그것을 믿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끊임없이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들을 속여왔다.
어린 백성들은 속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청산가리를 받아 마시고 있다.
노무현 前대통령이 임기말에 언론 개혁을 말할 때 그들은 힘의 진가를 발휘했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물이 튀어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민들을 향해 곤봉을 휘두루지도 않았고 물대포를 쏘지도 않았다.
묵묵히 더 열심히 일했다. 국민을, 서민을 위해서.
배고픈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심정이였을까.
이젠 더 이상 이 세상에선 그와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없다.
이전까지 나는, 성군이 가여운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거나 나라를 잃은 슬픔에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을 견딘 독립운동가를 책 속에 적힌 활자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지 못했다.
이젠 조금 알거 같다.
내 심장이 조금은 다시 뜨거워 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 날 좋은 날, 언제 시간 되는 날 봉하 마을 한 번 다녀와야지 한게 아직이다.
너무 많이 후회가 된다.
또, 사람들이 인간 노무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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