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풍경'에 해당되는 글 43건
- 2012/01/15 옥상에서 SkyLife 안테나를 떼며 절도범을 체험했다
- 2012/01/03 까다로운 슬림 키보드 먼지 청소하기
- 2011/10/18 층간소음을 대하는 나의 자세
- 2011/07/27 점점 죽음이 무뎌지는 나이... (1)
- 2011/06/24 이젠 잊혀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
- 2011/04/30 내 심장도 상처 받으면 아파요. 아파요. 나도...
- 2011/04/17 통신 기본요금에까지 부가세는 너무 했다.
- 2011/03/28 다시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 2011/03/08 LCD 모니터 강화유리 제거 (8)
- 2011/03/06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일하기가 싫어진다.
- 2010/06/16 [#1]매년 유린당하는 아름다운 문막 섬강 (6)
- 2010/06/01 후보 너무 많다. 그래서 메모 했다.
- 2010/05/12 10년 사용한 LGT에서 KTF로 갈아타기. 마음이 허전한 이유. (3)
- 2010/02/17 절망이 사치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 2010/02/10 나는 잘 살고 있는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가? (4)
요즘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만 들어가면 이사 할 때 이전해야 할 주소나 장비들을 미리 예약 할 수 있다.
인터넷이 곧 밥줄이니 우선 인터넷과 TV 이전 신청부터 했다.
그러고 잠시 후 드는 생각이 안테나는 어쩌지 하는 의문이다.
망설임없이 지식 검색을 하니 SkyLife는 사용자가 직접 뜯어서 갖어 가야 한다는 답변이 많다.
이상하다 싶어 100번에 문의를 하니 이사 할 때는 사용자가 직접 뜯어가는게 맞단다.
만약 기사분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틀이상 대기해야 한다니 까짓것 내가 뜯고 만다고 했다.
KT면 나름 대기업인데 TV 위성 안테나 뜯는 것까지 소비자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기업 권력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작년에 처음 설치 할 때는 옥상에 올라가보지 않아고 지금까지 내 안테나가 어떤 것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안테나를 뜯으러 옥상에 올라가보니 낡은 접시 안테나 하나가 있다.
아무리 봐도 2011년 1월에 설치한 안테나가 아니다.
집안에 들어와 동축케이블 고유번호를 확인하고 옥상에 올라가 다시 확인 해 보니 이 낡은 안테나가 내께 맞다.
첫눈에 봐도 옥상 방수공사를 하기도 전에 설치 된 안테나였다.
내가 SkyLife를 신청 했을 때 새 안테나를 설치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두고 간 이전의 안테나를 그대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이 건물이 2004년 12월 24일 준공 됐으니 방수 공사를 하기도 전에 설치 된 안테나라면 설치되고 6년 이상은 지난 안테나를 재활용하면서 서비스 요금은 그대로 다 받아간다.
그나마 자기들이 설치한 것도 아니면서 나보고 직접 안테나를 뜯어야 한단다.
옥상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을 뜯어내고 있는데 내가 마치 절도범이 된 느낌이다.
한 손엔 안테나, 한 손에 공구를 들고 옥상을 내려오는 내 모습은 딱 고철도둑 그 모습이였다.
살면서 별 희안한 경험을 다 해본다.
약정이 끝나면 내 기필코 고감도 디지털 안테나를 구입 해 공중파 방송만 보리라.
만원이 넘는 키보드는 처음인 듯 하다.
게임 하려고 수십만원 키보드를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이 너무 싸구려 키보드를 쓰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04년에 구입 한 컴퓨터를 2010년까지 썼다.
중간에 CPU가 고장난 적이 있는데 같은 종류의 CPU로 갈아 끼운 것 말고는 업그레이드 없이 6년을 넘게 썼다.
사람들은 내 컴퓨터를 보면 의아해 했다.
최신 기종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작업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면 굳이 컴퓨터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다양한 기능을 내장한 고가의 장비들도 내가 사용하는 기능은 뻔하기 때문에 낭비다.
컴퓨터를 오락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쉽게 고가의 컴퓨터를 바꾸지만 실제로 컴퓨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군의 사람들은 굳이 비싸고 최신의 장비를 고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386, 486 최신 컴퓨터에 열광할 때 안철수 교수는 여전히 XT, AT 흑백모니터에서 백신을 만들고 있었다는 이야기의 영향을 받고 자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시만 해도 백신을 만들 때 고가의 486이 아니여도 작업은 충분히 가능 했다.
2010년 컴퓨터를 바꾸게 된 계기는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였다.
기계 쪽은 나보다 능한 친구가 요즘은 이런 정도의 사양은 되야 한다고 추천 해 준 사양으로 6년만에 컴퓨터를 새로 구입했다.
새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좋은 장비가 작업 능률을 올려 주는구나 하는 것이다.
내가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투자와 시류를 읽는 것은 분명히 업무 효율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자주 청소를 하지만 언제부턴가 키감이 무겁고 잘 눌려지지 않는 키들이 생겼다.
이 참에 나도 좋은 키보드 한번 써보자며 쇼핑몰을 찾아 다녔는데 이것도 아직 쓸만한데 막상 새것을 또 사려니 망설여진다.
다시 청소 해서 조금만 더 써보고 새로 구입 해보자고 마음 먹는다.
7천원 대 키보드였으면 이미 글씨들은 다 사라지고 검은 자판만 남아 있을텐데 역시 키보드는 만원 이상은 줘야 하나보다.
많을 때는 A4 백장정도 분량만큼 키보드를 쓴다.
어깨가 빠질것같은 통증은 10년째 직업병이다.
우리에게 어깨는 의례 아픈 것이다.
키보드도 고생이 많다.
내가 1년을 쓰면 키보드에 글씨가 지워지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멀쩡한거 보면 좋은 키보드다.
뒷판엔 나사가 여러개가 있다.
좌우위아래중간 순으로 나사를 풀어준다.
뒷판을 열고 나면 자판과 자판 틀과 고정 된 작은 나사가 있다.
두세개 정도 되니 꼼꼼히 찾아보고 모두 풀어야 한다.
먼지 청소에는 카메라 청소 할 때는 공기 압축기가 좋다.
일단 간단히 키보드 위에 쌓인 먼지를 불어낸다.
Ctrl키 이상의 큰 키에는 글자 키에는 없는 철핀이 달려 있다.
좌우 균형을 맞춰 주기 위한 것이다.
노트북의 키보드와 같은 형태다.
위쪽부터 힘을 주어 뜯어 내듯이 당긴다.
그리고 다시 아래쪽을 당기면 키가 고정핀으로부터 분리 된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많다.
요즘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했더니 이게 키보드에까지 들어가 키 눌림을 방해하고 있었다.
면도기 청소하는 솔이다.
쓱쓱 닦아 내면 먼지가 잘 쓸린다.
카메라를 청소하는 일명 뽁뽁이와 면도기 솔로 먼지와 머리카락을 처리 한다.
키를 모두 뜯어내서 한번에 청소하면 좋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플라스틱 고정 핀이 약해 부러질 염려가 있어 조심조심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속핀을 먼저 키에 끼우고 위치를 잘 잡아서 새개 눌러 주면 따딱 소리가 나면서 키가 맞춰진다.
뜯어내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끼울 때는 위 아래 방향을 잘 맞춰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평소 키가 잘 안눌려졌던 부분만 뜯어서 청소 해 주고 다른 곳은 솔로 쓸어내듯이 청소 했다.
자판은 전원 장치와 분리하면 플라스틱과 동선에 불과하다.
전에는 이걸 물로 씻어 낸적이 있다.
키가 조립 된 상태에서 물로 씻어 낸다.
그리고 찬바람이 나오는 드라이어로 말린다.
혹시 몰라서 건조한 그늘에서 하루정도 더 말린 다음 썼는데 작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금속이나 동선 부분에 녹이 쓸 수 있으니 빨리 건조 시켜야 하고 뜨거운 바람을 사용하게 되면 자판에 변형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해야 한다.
자판 시리얼이나 버퍼등이 있는 간단한 구조의 기판과 자판을 조립하는 과정이다.
자판의 회로선과 기판의 회로선을 잘 맞춰 조립한다.
그리고 떼어낸 뒷판을 다시 조립하는데 나사를 끼우기 전에 우선 키보드가 잘 눌려지는지 체크해 보는게 좋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키보드를 청소 해 주면 오타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당분간은 문제 없이 사용 할 수 있을거 같다.
키보드 반응속도도 좋다.
키가 잘 안눌려 무의식적으로 힘을 더 줘야 했던 손가락에도 부담이 없어졌다.
이제 일 시작 해야겠다.
명절에 모처럼 시골 집에 다들 모였다.
땅콩만하던 조카들은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고 곧 중학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리뛰고 저리 뛰는 사내 녀석들은 딱 그 또래 애들처럼 논다.
조카들 여럿이 이방 저방을 뛰어 다녀 정신이 없는데 조카 세 놈의 뛰는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유심히 관찰하니 뒷꿈치를 들고 뛴다.
시골집은 단독이고 마당도 있는데 집에서 뒷꿈치를 들 필요는 없었다.
누나에게 말하니 아파트 주민들이 층간소음에 민감하고 사내 아이만 셋이다보니 어릴 때부터 애들에게 집에서는 걸을 때도 뒷꿈치를 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소음에 민감한 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귀마개다.
수험생용으로 문구점에서 9백원이면 살 수 있다.
줄 달린건 천원이다.
집에 이런 귀마개를 몇 개씩 구비해 놓고 지낸지가 수년이 지났다.
소음에 민감하고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즐기다보니 마음 같아서는 조용한 마을에 단독 주택을 지어 놓고 집에서만큼은 조용히 살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평수 작은 공공주택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소형 공공주택의 공통 된 특징이 있다면 층간 소음이 심하다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카테고리를 뒤적이다 예쁜 전원주택이 나오면 한 없이 바라보며 그런 집에 사는 나를 상상하며 위안을 삼는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받는 스트레스가 갈수록 더 괴롭다.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아래층 사람들을 배려 하지 않는다.
아래층 사람은 다시 아래층 사람의 윗층 사람이 되지만 사람들은 본인의 허물은 보지 못 한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 된다.
몸무게 2Kg 정도 되는 8년 묵은 작은 개를 키우고 있다.
나는 이 개가 침대에서 뛰어 내릴 때 아랫층에 울리까봐 방과 거실에 카페트를 늘 깔아 놓고 있다.
주인이 없으면 보통 잠을 자지만 들쥐를 잡아 먹던 사냥 개 습성 때문에 조그만 소리에도 잘 짖어 무더운 한 여름에도 나갈 땐 항상 모든 집안의 문을 꼭꼭 닫고 나가야 한다.
집안에서 나는 늘 실내화를 신고 있어 그동안 낡아서 버린 실내화도 꽤나 많다.
혼자 사는 집에 실내화만 서너개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식탁 의자 다리에 두꺼운 천이나 테니스 공을 덧대고 뒤꿈치로 쿵쿵거리는 아저씨, 생각없이 뛰어 다니는 유쾌한 어린이들이 집안에서 실내화만 신어도 층간 소음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심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내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에 이웃에게 분노의 대상이 된다.
귀마개는 잘 때도 쓰고 집에서 일하게 될 때도 쓰고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조용한 내 집 하나 갖게 되기 전까지는 이 귀마개를 써야 할거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죽는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죽는 그 순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한번도 행복해보지 못하고 이대로 끝나야 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살아온 내내 그랬다.
이제는 내가 살았던 하루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작아진다.
죽는 그 순간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행복해 질 수 있는 기회가 하루만큼 더 줄었기 때문이다.
오늘 잠들면 또 하루만큼 두려움이 작아진다.
잊어야 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왜 기억 하나는 잊혀지지 않을까.
신이 나를 버렸나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단다.
자기 앞에 다시는 그런 사랑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를 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단다.
그러면...
그 오랜 시간 상처 받으며 한 사람만 바라보던 나는...
내 진심도 상처 받으면 아파요.
나도 아플 줄 알아요.
당신 때문에 상처 받았어요.
그 아픔이 익숙해 지는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7년전의 편지를 보고 알았어요.
나도 상처 받으면 아프다는 걸.
| 부가가치세는 재화나 용역이 생산되거나 유통되는 모든 거래단계에서 생기는 부가가치를 과세대상으로 하여 과세하는 간접세(間接稅)이다. 부가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으로는 기업이 지급하는 급료·지급이자·세금과공과·감가상각비 및 이윤 등을 합계하여 계산하는 가산법(加算法)과 기업의 재화와 용역 등의 매출액에서 기업의 재화와 용역 등의 매입액을 공제하여 계산하는 공제법(控除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부가가치세법에서의 부가가치는 공제법에 의하여 계산하고 있다. 따라서 부가가치세는 부가가치에 세율(稅率)을 곱하여 산출하게 되는데, 공제법의 원리에 의하면 부가가치세는 매출세액(賣出稅額)에서 매입세액(買入稅額)을 공제한 금액이 된다. 부가가치세의 일반적 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부가가치세는 일반소비세(一般消費稅)이다. 즉 부가가치세법상 면제된다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모든 재화와 용역의 소비에 대하여 과세된다. 따라서 실제담세자는 최종소비자인 것이다. 둘째, 부가가치세는 사업자가 조세의 징수를 대행해 주는 간접세(間接稅)이다. 부가가치세는 국가가 소비자로부터 직접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가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할 때 징수하여 일정기간 내에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이다. 셋째, 부가가치세는 부가가치(附加價値)에 대하여 과세하는 조세이다. 즉 부가가치세란 전(全)거래단계의 모든 사업자가 자기단계(自己段階)에서 창출한 부가가치에 대하여 부과·징수하는 세금이다. 이때의 부가가치는 공제법(控除法)에 의하여 계산한다. |
이번 달 나의 통신 요금은 대략 이렇다.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나의 통신 요금은 기본료를 포함 30,982원이다.
부가가치세 3,098원은 기본요금에까지 세금을 적용한 금액이다.
기본요금은 내가 통신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이용하지 않아도 통신사에서 일방적으로 강제 징수하는 요금인데 여기에까지 세금을 붙이고 있다.
금액이 작다보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부당 세금 수익이다.
기본요금도 부당한데 거기에 부당한 세금까지 징수되고 있다.
문자를 보내 놓고 애써 다른 일들을 찾아 부산을 떤다.
그렇게 시간이 꾀 지난거 같은데 아직 답장이 없다.
10년 전,
27살의 나는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간의 내 삶에서 누적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알게 된건 하늘이 내게 그래도 살아보라는 희망같은 거였다.
내 심장은 내내 뛰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그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이 설렜다.
그 사람 또한 나만큼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너무 무기력했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살아가는 의욕은 점점 죽어가고 그 사람은 멀어져 갔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같은 고통의 세월은 길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도 써 봤지만 누굴 만나도 도무지 두근거림이 없었다.
그럴수록 내 주변에 좀 더 견고한 벽을 쌓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누군가 또 다가 올까봐 두려웠다.
7년만이였다.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죽은거 같았던 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젠 내게 감정은 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 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건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다.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방적이다.
나의 짝사랑.
내 머리는 더 애쓰지 말라하지만 내 심장은 그녀를 향해서만 달리고 있다.
나는 오늘도 하루종일 울리지 않는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이지만 고객이 직접 작업실을 찾아올 때가 있다.
작업 설명을 하는데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찌르는 사람이 있다.
IT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이 손가락으로 자기 모니터를 찌르는 걸 보고 덤덤히 지켜보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를 바꾸면서 모니터도 하나 더 장만하기로 했다.
이번엔 기필고 강화유리를 끼워 고객들의 손가락으로부터 내 모니터를 지켜 내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거울이 아니다.
모니터에 비친 텔레비전 화면에 카메라 포커스가 맞춰질만큼 강화유리의 반사력은 대단했다.
요즘처럼 햇볕이 좋은 화창한 날이면 모니터 글씨를 볼 수 없을만큼 작업이 불가능하게 된다.
작은 빛도 반사 시키기 때문에 눈도 많이 피곤하다.
강화유리를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모니터 뒤의 나사를 모두 풀고 케이스를 열려고 시도하니 안된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유리와 케이스가 양면테이프로 고정 돼 있을 수 있다고 하니 A/S를 맞겨보라고 한다.
일단 포기하고 1주일을 다시 눈부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십여분을 모니터 케이스를 째려보고 있었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그것을 한참동안 노려보고 있는건 내 오랜 습관이였다.
그러다 문득 자동차 유리에서 성에를 제거할 때 쓰던 끌 칼이 생각났다.
아래부터 공략하니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유리와 케이스를 양면테이프로 고정시킨 건 아니였다.
아래로부터 좌우 번갈아가며 조금씩 위로 벌려갔다.
톡톡거리면서 케이스가 열린다.
너무 힘을 주면 끌 칼로 액정 모니터에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유리 좌우 양옆으로만 흰색 양면테이프로 고정 돼 있었다.
칼을 끼워 양면 테이프를 제거해 간다.
의외로 어렵지 않다.
드디어 유리가 분리 됐다.
고객으로부터 나의 모니터를 보호할 것이냐 내 눈을 보호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나는 내 눈을 선택했다.
이전까지 강화유리는 나에게 계륵이였다.
반사 되는 것이 없다.
모니터 답다.
유리를 제거한 공간에 유리 두깨만큼의 틈이 있지만 그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만큼 시야가 쾌적해 졌다.
강화유리는 컴퓨터를 험하게 다루는 초등학생이 있거나 PC방에서나 필요한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우울증이 무력감을 갖어온다고는 하는데 나도 그런 것일까.
어제 오늘 그런게 아니라 10여년 전 내가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늘 그랬던거 같다.
일을 해야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단 뉴스를 읽고 댓글을 단다.
카페에 들어가 출석체크를 하고 아고라에 가서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거나 사진을 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열어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와서는 다시 뉴스들을 클릭한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같은 페이지를 다시 리프래시 하면서 무의미한 클릭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청소를 하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반복.
해가 늬엇늬엇 넘어갈 쯤 일을 시작한다.
한시간 일하고 삼십분 땃진하기를 반복하다 밤이 되면 뉴스를 시청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뉴스를 읽는다.
그러다 잠깐 일을 했다가 밤늦은 오락프로를 보고 잠이 든다.
거의 10년을 이렇게 살아온거 같다.
무의미하게 웹서핑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일이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 작업 기한이 늦어져 의뢰인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의지가 약한 탓일 수도 있다.
아니란 걸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해야 될 일도 산더미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머리만 복잡해 진다.
섬강은 횡성의 태기산을 발원으로 원주를 가로질러 흐르다 부론에서 남한강과 만나게 된다.
정선에서 유명한 아우라지를 이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섬강변은 억새풀이 매년 장관을 이루고 철마다 철새들이 들러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습지가 많은 섬강은 생태보존이 비교적 잘 돼 있어 여러 생물들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다.
섬강은 문막 평야의 논밭에 중요한 농수원이기도 하다.
문막 섬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10월 말이나 11월 중순까지 절정이다.
드넓게 펼쳐지는 억새풀과 늦가을의 붉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 무리들이 한폭의 그림을 선물한다.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사춘기 학창시절을 보내며 추억이 많은 곳이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너그럽게 사람들을 반겨주는 곳이다.
그런 섬강이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있다.
2007년 섬강에 대해 처음 포스팅하게 된 것도 섬강의 아름다운 것들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http://blog.daum.net/zibsin/11330893
이때부터 매년 같은 내용으로 문막읍과 원주시에 제보를 했지만 섬강의 훼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는거 같았다.
몇해전 강 둑을 정비하면서 억새풀 군락지가 많이 훼손 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억새풀은 다시 자라서 섬강의 멋진 풍경을 완성해 갔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기도 하지지만 자주 섬강에 들러 풍경을 감상하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특히 늦가을이 되서 추수가 끝난 문막 평야를 가로질러 펼쳐진 섬강의 아름다움은 이 고장의 자랑이기도 하다.
벌써 한차례 억새풀을 베어간 자리다.
무성하게 자라 있어야 할 억새풀 밭이 휑하다.
보통은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베어가는데 자리를 보니 한달 전 다녀간 듯 하다.
기계로 억새풀을 베어간 자리가 흉하다.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억새풀을 베어가기 위해 기계가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노림리에서 후용리 앞까지의 모습이다.
섬강의 극히 일부분이다.
실상은 후용리 앞에서부터 부론까지 억새풀 군락지는 모두 기계로 베어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2000년 들어서 매년 자기 것인냥 자연을 훼손해가며 억새풀을 대량으로 베어가고 있다.
가을엔 암모니아 발효를 하는 걸로 봐서 가축용 사료로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계를 동원해 이렇게 대규모로 억새풀을 베어간다면 분명 전문 업자들 소행이지만 사실 강변에 억새풀 베어지는 것 따위는 사람들 관심사는 아니다.
2007년, 이메일로 강변의 억새풀 무단 체취는 합법이 아니라는 답변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나는 매년 섬강의 사진을 찍어 문막읍과 원주시에 보내고 있다.
섬강의 모습이 흉하게 변해가는 것만은 막고 싶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들에게 누가 대량으로 억새풀을 베어가는지 물어 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가까운 주민들은(가축업자)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소행인지 얼굴이라도 보고자 평소보다 더 자주 섬강을 들리지만 언제나 한발 늦는다.
올해부터는 6월부터 매달 섬강의 변화되는 모습을 찍어둘 생각이다.
사람들이 조금만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 간다면 섬강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9월 말이 되면 섬강은 갖가지 가을 꽃이 피었다 지며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바꾼다.
10월 말에서 11월이 되면 철새들이 찾아와 운치를 더하며 섬강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하천 보호지역이라 야영이나 낚시는 할 수 없지만(일부지역은 할 수 있음) 풍경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억새풀이 이렇게 훼손되기 전엔 사람들이 알음알음 자주 찾는 곳이였다.
섬강을 따라 남한강(부론)쪽으로 계속 올라가다보면 흥원창이라는 곳이 있다.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풍경이 좋고 야영이나 낚시를 하기에도 좋은 곳이지만 섬강도 4대강 사업 대상이라 곳곳에 시련이 많다.
한쪽에서는 포크레인과 기계들이 강바닦을 파헤치고 한쪽에선 자연 습지와 억새풀을 훼손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7월, 우기가 시작되면 지금 사진에 보이는 곳은 모두 물에 잠길만큼 물이 불어난다.
문막은 물이 많아 지명이 문막이 되었다는 말이있다.
어원에는 섬강의 물을 막아 물막이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물이 많은 곳이다.
20년을 넘게 살며, 20년 넘게 봐 온 것이지만 지금 공사하고 있는 4대강 사업 현장이 7월 초까지 완공이 되지 않는다면 공사를 위해 물을 막았던 둑은 분명히 무너질 것이고 공사 자재들이 떠내려가 하류 지역에 쌓여 물이 넘칠 것이 분명하다.
바로 몇해전에도 부론은 강물이 범람 위기에 있었고 인근 주택과 민물 어업자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충주댐이 방류라도 한다면 부론과 문막은 20년만에 섬강의 범람 위기에 놓여지게 된다.
그것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막기 힘들다 쳐도 섬강의 자연습지와 억세풀 훼손이라도 막을 수 있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머리가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는 후보가 너무 많다.
시장, 도지사는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 후보로 나섰다.
그 외, 의원이라든가 비례대표, 교육감 후보들은 딴 세상 사람들이다.
올해는 선거 홍보물도 투표 이틀전에서야 도착 했다.
안올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우선 인터넷에 들어가 각 후보들의 공약들을 살펴 봤다.
모든 후보를 살펴보는데 족히 반나절이 넘게 걸린 듯 하다.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니 공약 내용을 좀 더 꼼꼼히 살펴 봐야 했다.
세상 좀 살다보니 그들의 경력이란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울 수 있는 꺼리에 불과하는 걸 터득하게 됐다.
친구는 관상을 본다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무상급식은 단골 과제였고 인성교육과 기초교육, 사교육비 절감, 도내 고교평준화에 대해 언급한 후보에 마음이 쏠린다.
내가 선택한 교육감이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내 조카들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나름 신중했다.
그외 도, 시 의원들의 공약도 꼼꼼히 살펴 봤다.
어떤 후보의 홈페이지는 내용이 너무 부실해 그 사람을 알기엔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아쉽다.
나같은 사람에겐 친밀감 있게 홈페이지가 꾸며지고 커뮤니티가 활성화 된 후보에게 마음이 간다.
가장 관심이 가는 도지사, 시장 선출에는 오히려 고민이 길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지하던 후보 모두 이번 도지사, 시장 후보로 나섰다.
그들이 어린시절 부터 이 고장에서 어떻게 성장했고 타지에 가서는 어떤 일을 했고 정치를 위해 낙향(?) 했을 땐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항시 지역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후보가 수십명이고 선출 해야 할 사람도 8명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름을 까먹을 수도 있고 누가 누군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포스트잇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내일 요것을 잊어버리고 투표장에 간다면 나는 아마도 아는 문제도 찍기로 푸는 멍청한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고민,
강산이 푸른데 투표를 일찍 끝내고 산을 갈까 낚시를 갈까...
군대를 다녀오니 당연 동기들보다 졸업이 늦었다.
1998년,
학창시절 마음에 두던 친구가 LG전자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소문으로 연락은 닿았지만 이미 매우 동떨어진 생활공간에 놓여지게 됐고 같은 학교를 입학했다는 공감대 말고는 없었다.
겨우 2년남짓 지났을 뿐인데 전역하고 나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누구나 인터넷을 하게 됐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첩보다 작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나도 저거 하나 있어야 겠다 싶어 통신사를 정하던 중 은연 중 LGT에 마음이 갔다.
그 후로 한동안 나의 전자 제품은 모두 LG 상표를 달고 있었다.
중간에 여자친구와 커플 요금을 해야 했을 때 잠깐 KTF로 옮겼던 적을 빼고는 10년을 넘게 LGT만 사용해 왔다.
2000년이였던가, 친구들과 설악산 등반을 했을 때 다들 대청봉 꼭대기에서 전화기를 들고 섰다.
나는 대청봉에 서서 구름을 발 아래에 두고 속초 앞바다를 바라보는 감격을 전해줄 마땅한 사람이 없었지만 친구들은 신호를 잡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 뛰며 하늘에 기원 하듯 전화기를 든 손을 하늘로 향해 있었다.
혼자 아무것도 않던 내게 친구 하나가 다가와 전화기 신호 잡히는지 보잖다.
안테가 떠 있었다.
당시에 친구들은 센스있는 젊은 사람들의 통신 아이콘이였던 어느 통신사에 가입 돼 있었다.
친구들은 내 전화기를 돌려쓰기 시작 했다.
통신사 때문이였는지 전화기 성능 때문이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후로 나의 LGT에 대한 무한 신뢰는 뿌리 튼튼하게 자리 잡게 됐다.
꼬박 십년을 써오던 LGT를 버리고 KTF로 옮겼다.
번호이동 동의 메시지가 왔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얼마 후 전화기에서 안테나가 사라졌다.
그런데 마음 한켠이 무겁다.
이깟 통신사 옮기는게 뭐라고 좀 더 좋은 서비스 주겠다고 해서 옮긴건데 오랜 친구와 헤어진 듯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내가 통신사를 바꾸려고 결정한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이든 하나를 결정하면 왠만해서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다.
인터넷 회선도 한 회사에서 12년을 썼다.
자꾸 끊기고 속도도 느리고 10년을 넘게 썼다고 신규 회원에게 주는 그런 사은품도 없었다.
장기 고객이라며 VIP 고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지 않아도 미련 스럽게 남아 있는 그런 사용자였다.
인터넷과 케이블TV를 함께 이용하면서 케이블TV를 해제하고 인터넷은 휴면 서비스를 받게 됐다.
장기 고객이니 잘 해주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케이블TV를 재 가입할 때는 부가세별도인 6만원의 가입비를 내야하고 인터넷 역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안내를 가장 먼저 받게 됐다.
10년, 20년을 썼어도 고마운 고객이 되기는 커녕 서비스 변경이나 해지를 하게 되면 바로 배신자가 되는거였다.
오히려 2, 3년 정기적으로 통신사를 옮겨다니며 여러 혜택을 받는 가입자들의 시선에 나는 미련스럽고 똑똑하지 못한 소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계기로 나는 10년 넘게 지켜오던 고집을 버리고 남들처럼 현명한(?) 소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 휴대전화 통신사를 바꿨다.
곧 인터넷과 TV도 바꿀 예정이다.
최신폰에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됐지만 막상 안테나가 꺼져버린 내 휴대폰의 시스템을 초기화 하고 전원을 끄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 명의로 KTF에 가입된 어머니의 휴대폰을 LGT로 옮기기로 했다.
내 딴엔 이것도 10년 의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란 생각이 든다.
나는 참 세상 어설프게 사는거 같다.
내가 이런다고 LGT가 나에 대해 뭘 생각해 주겠냔 말이다.
웃기다.
나는 기업들에게 고객이 아니고 그냥 객일 뿐이다.
나중에 몇년이 지나고 KTF에서 SKT로 옮길 땐 기쁠려나?
날씨가 흐린거 같았다.
나는 안에 있으니 밖이 궁금하다.
블라인드를 열어 제치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궁금해 하는 것처럼 연신 밖을 내다본다.
저녁부터 눈이 온다더니 공기는 그냥 어두워지기만 한다.
앞집 간판에 불이 들어온 걸 보니 밤인가보다.
다시 밖을 본다.
불꺼진 사무실보다 밝다.
전화가 걸려온다.
모르는 번호다.
받지 않는다.
내게 또 어떤 무서운 말로 나를 기죽게 할지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대부분의 두려운 전화는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춥다.
캄캄한 공간에 혼자 이러고 있으니 우울하다.
이럴 땐 사람이 그립지만 만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주는 것, 누군가 나를 만나 주는 것, 그건 거래다.
지금은 불편한 거래다.
절망은 혼자 하는 것이 제맛이다.
살아온 날들에 미련이 없고 살아 갈 날들에 기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살고 싶어서, 존재하고 싶어서 절망하고 싶다.
깊은 나락에서 살고자 바둥거리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절망도 하지 못하고 희망도 갖을 수 없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달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가 왔다.
청구서를 이메일로 신청하니 문자 12건이 무료다.
자세한 내역을 보니 지난 달 3건의 문자를 썼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휴대폰에서 문자를 보낼 일은 거의 없는데 지난달은 3건이나 보냈다.
LGT 홈페이지에서는 50건이 무료고 네이트온에서는 10건이 무료다.
내 명의로 된 어머니 휴대폰까지 더하면 120건이 무료다.
그러나 한달에 문자 12건을 못보낸다.
문자가 그러할진데 전화는 더더욱 쓸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쓸 일이 없는건지, 내가 안쓰는 건지는 모르겠다.
캐피탈, 보험, 도박, 통신사 관계자들이 나의 베프다.
얼마나 친한지 200건의 문자함이 대부분 이들의 문자로 차 있다.
지난 달엔 그래도 19,000원은 나왔는데 이번엔 3천원이 덜 나왔다.
전화요금은 대부분 2만원을 넘지 않는다.
인터넷전화를 함게 쓰지만 전화요금보다 충전할 때 드는 전기요금이 더 많이 나올판이다.
휴대폰 통화료가 반이고 같은 통신사끼리는 통화료 무료라기에 기본요금 2천원을 더 내고 요금할인제로 가입했다가 3개월만에 일반 상품으로 전환 했다.
휴대전화 사용한지는 13년째가 되지만 가장 많이 나왔던 요금이 3만5천원 정도 되는거 같다.
옛날 호출기(삐삐) 사용할 때 기본요금이 1만5천원이였다.
통신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혼자 있을 때가 좋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타지 않는게 아니다.
누구보다 외롭다.
며칠씩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 날도 많다.
전화기엔 200여명의 전화번호가 저장 돼 있다.
어머니 말고는 마땅히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은 없다.
혼자 사는 나이 많은 아들이 여자친구도 없어 어머니한테만 전화 한다고 한 소리 들은 후부터는 어머니께 전화하는 것도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가족들보다 통닭집에 더 많이 전화하게 된다.
부담 스럽다.
지인들에게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전화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선약이 있으면 어쩌나, 별로 생각 없는데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내키지 않는 약속을 잡는건 아닌가 생각이 많아진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만나자는 제안에 거절을 못하고 나갔던 적이 많다.
내가 항상 술이 마시고 싶은건 아니다.
그래도 이번에 거절하면 다음엔 연락을 안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사람들과의 만남이 부담 스러워지고 퇴근 무렵이 되면 오늘 저녁은 혹시라도 누가 만나자고 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가 전화를 할까? 만나자고 하면 밥이나 먹을까? 술마시자고 할 때 거절하면 실망하지 않을까?
돈이 없는데 비싼 식당 가자고 하면 모른척 얻어 먹을까? 카드 긁어야 되나?
아무도 전화 안하면 혼자 뭐하지?
비도 오는데 파전이라도 먹자고 전화하면 상대도 내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될까? 민폐가 될까?
...
나의 통신요 절약 비결은 궁극의 소심함인거 같다.
전화요금 8~9만원이 나오는 사람도 있다던데 부업으로 텔레마케터 하는 사람일까?
나의 사회생활은 실패인거 같다.
인생은 굴곡이 있다던데 내 인생에도 꽃피는 날이 있다면 그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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