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5 16:41

옥상에서 SkyLife 안테나를 떼며 절도범을 체험했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만 들어가면 이사 할 때 이전해야 할 주소나 장비들을 미리 예약 할 수 있다.
인터넷이 곧 밥줄이니 우선 인터넷과 TV 이전 신청부터 했다.
그러고 잠시 후 드는 생각이 안테나는 어쩌지 하는 의문이다.
망설임없이 지식 검색을 하니 SkyLife는 사용자가 직접 뜯어서 갖어 가야 한다는 답변이 많다.
이상하다 싶어 100번에 문의를 하니 이사 할 때는 사용자가 직접 뜯어가는게 맞단다.
만약 기사분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틀이상 대기해야 한다니 까짓것 내가 뜯고 만다고 했다.
KT면 나름 대기업인데 TV 위성 안테나 뜯는 것까지 소비자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기업 권력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작년에 처음 설치 할 때는 옥상에 올라가보지 않았고 지금까지 내 안테나가 어떤 것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안테나를 뜯으러 옥상에 올라가보니 낡은 접시 안테나 하나가 있다.
아무리 봐도 2011년 1월에 설치한 안테나가 아니다.
집안에 들어와 동축케이블 고유번호를 확인하고 옥상에 올라가 다시 확인 해 보니 이 낡은 안테나가 내께 맞다.
첫눈에 봐도 옥상 방수공사를 하기도 전에 설치 된 안테나였다.
내가 SkyLife를 신청 했을 때 새 안테나를 설치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두고 간 이전의 안테나를 그대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이 건물이 2004년 12월 24일 준공 됐으니 방수 공사를 하기도 전에 설치 된 안테나라면 설치되고 6년 이상은 지난 안테나를 재활용하면서 서비스 요금은 그대로 다 받아간다.
그나마 자기들이 설치한 것도 아니면서 나보고 직접 안테나를 뜯어야 한단다.

제작년도를 보면 대략 2004년 3월이다.
옥상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을 뜯어내고 있는데 내가 마치 절도범이 된 느낌이다.
한 손엔 안테나, 한 손에 공구를 들고 옥상을 내려오는 내 모습은 딱 고철도둑 그 모습이였다.
살면서 별 희안한 경험을 다 해본다.
약정이 끝나면 내 기필코 고감도 디지털 안테나를 구입 해 공중파 방송만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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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3 17:14

까다로운 슬림 키보드 먼지 청소하기

2년 전 12,000원인가를 주고 인터넷에서 구입한 슬림 키보드를 아직까지 잘 쓰고 있다.

만원이 넘는 키보드는 처음인 듯 하다.
게임 하려고 수십만원 키보드를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이 너무 싸구려 키보드를 쓰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04년에 구입 한 컴퓨터를 2010년까지 썼다.
중간에 CPU가 고장난 적이 있는데 같은 종류의 CPU로 갈아 끼운 것 말고는 업그레이드 없이 6년을 넘게 썼다.
사람들은 내 컴퓨터를 보면 의아해 했다.
최신 기종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작업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면 굳이 컴퓨터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다양한 기능을 내장한 고가의 장비들도 내가 사용하는 기능은 뻔하기 때문에 낭비다.
컴퓨터를 오락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쉽게 고가의 컴퓨터를 바꾸지만 실제로 컴퓨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군의 사람들은 굳이 비싸고 최신의 장비를 고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386, 486 최신 컴퓨터에 열광할 때 안철수 교수는 여전히 XT, AT 흑백모니터에서 백신을 만들고 있었다는 이야기의 영향을 받고 자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시만 해도 백신을 만들 때 고가의 486이 아니여도 작업은 충분히 가능 했다.

2010년 컴퓨터를 바꾸게 된 계기는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였다.
기계 쪽은 나보다 능한 친구가 요즘은 이런 정도의 사양은 되야 한다고 추천 해 준 사양으로 6년만에 컴퓨터를 새로 구입했다.
새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좋은 장비가 작업 능률을 올려 주는구나 하는 것이다.
내가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투자와 시류를 읽는 것은 분명히 업무 효율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자주 청소를 하지만 언제부턴가 키감이 무겁고 잘 눌려지지 않는 키들이 생겼다.
이 참에 나도 좋은 키보드 한번 써보자며 쇼핑몰을 찾아 다녔는데 이것도 아직 쓸만한데 막상 새것을 또 사려니 망설여진다.
다시 청소 해서 조금만 더 써보고 새로 구입 해보자고 마음 먹는다.

7천원 대 키보드였으면 이미 글씨들은 다 사라지고 검은 자판만 남아 있을텐데 역시 키보드는 만원 이상은 줘야 하나보다.
많을 때는 A4 백장정도 분량만큼 키보드를 쓴다.
어깨가 빠질것같은 통증은 10년째 직업병이다.
우리에게 어깨는 의례 아픈 것이다.
키보드도 고생이 많다.
내가 1년을 쓰면 키보드에 글씨가 지워지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멀쩡한거 보면 좋은 키보드다.

뒷판엔 나사가 여러개가 있다.
좌우위아래중간 순으로 나사를 풀어준다.

뒷판을 열고 나면 자판과 자판 틀과 고정 된 작은 나사가 있다.
두세개 정도 되니 꼼꼼히 찾아보고 모두 풀어야 한다.

먼지 청소에는 카메라 청소 할 때는 공기 압축기가 좋다.
일단 간단히 키보드 위에 쌓인 먼지를 불어낸다.

Ctrl키 이상의 큰 키에는 글자 키에는 없는 철핀이 달려 있다.
좌우 균형을 맞춰 주기 위한 것이다.
노트북의 키보드와 같은 형태다.
위쪽부터 힘을 주어 뜯어 내듯이 당긴다.
그리고 다시 아래쪽을 당기면 키가 고정핀으로부터 분리 된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많다.
요즘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했더니 이게 키보드에까지 들어가 키 눌림을 방해하고 있었다.

면도기 청소하는 솔이다.
쓱쓱 닦아 내면 먼지가 잘 쓸린다.
카메라를 청소하는 일명 뽁뽁이와 면도기 솔로 먼지와 머리카락을 처리 한다.

키를 모두 뜯어내서 한번에 청소하면 좋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플라스틱 고정 핀이 약해 부러질 염려가 있어 조심조심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속핀을 먼저 키에 끼우고 위치를 잘 잡아서 새개 눌러 주면 따딱 소리가 나면서 키가 맞춰진다.
뜯어내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끼울 때는 위 아래 방향을 잘 맞춰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평소 키가 잘 안눌려졌던 부분만 뜯어서 청소 해 주고 다른 곳은 솔로 쓸어내듯이 청소 했다.

자판은 전원 장치와 분리하면 플라스틱과 동선에 불과하다.
전에는 이걸 물로 씻어 낸적이 있다.
키가 조립 된 상태에서 물로 씻어 낸다.
그리고 찬바람이 나오는 드라이어로 말린다.
혹시 몰라서 건조한 그늘에서 하루정도 더 말린 다음 썼는데 작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금속이나 동선 부분에 녹이 쓸 수 있으니 빨리 건조 시켜야 하고 뜨거운 바람을 사용하게 되면 자판에 변형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해야 한다.

자판을 케이스에 조립 할 때 가장 주의 해야 할 부분이다.
자판 시리얼이나 버퍼등이 있는 간단한 구조의 기판과 자판을 조립하는 과정이다.
자판의 회로선과 기판의 회로선을 잘 맞춰 조립한다.
그리고 떼어낸 뒷판을 다시 조립하는데 나사를 끼우기 전에 우선 키보드가 잘 눌려지는지 체크해 보는게 좋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키보드를 청소 해 주면 오타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당분간은 문제 없이 사용 할 수 있을거 같다.
키보드 반응속도도 좋다.
키가 잘 안눌려 무의식적으로 힘을 더 줘야 했던 손가락에도 부담이 없어졌다.
이제 일 시작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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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6:48

층간소음을 대하는 나의 자세


명절에 모처럼 시골 집에 다들 모였다.
땅콩만하던 조카들은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고 곧 중학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리뛰고 저리 뛰는 사내 녀석들은 딱 그 또래 애들처럼 논다.
조카들 여럿이 이방 저방을 뛰어 다녀 정신이 없는데 조카 세 놈의 뛰는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유심히 관찰하니 뒷꿈치를 들고 뛴다.
시골집은 단독이고 마당도 있는데 집에서 뒷꿈치를 들 필요는 없었다.
누나에게 말하니 아파트 주민들이 층간소음에 민감하고 사내 아이만 셋이다보니 어릴 때부터 애들에게 집에서는 걸을 때도 뒷꿈치를 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실리콘 귀마개


소음에 민감한 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귀마개다.
수험생용으로 문구점에서 9백원이면 살 수 있다.
줄 달린건 천원이다.
집에 이런 귀마개를 몇 개씩 구비해 놓고 지낸지가 수년이 지났다.
소음에 민감하고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즐기다보니 마음 같아서는 조용한 마을에 단독 주택을 지어 놓고 집에서만큼은 조용히 살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평수 작은 공공주택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소형 공공주택의 공통 된 특징이 있다면 층간 소음이 심하다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카테고리를 뒤적이다 예쁜 전원주택이 나오면 한 없이 바라보며 그런 집에 사는 나를 상상하며 위안을 삼는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받는 스트레스가 갈수록 더 괴롭다.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아래층 사람들을 배려 하지 않는다.
아래층 사람은 다시 아래층 사람의 윗층 사람이 되지만 사람들은 본인의 허물은 보지 못 한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 된다.

몸무게 2Kg 정도 되는 8년 묵은 작은 개를 키우고 있다.
나는 이 개가 침대에서 뛰어 내릴 때 아랫층에 울리까봐 방과 거실에 카페트를 늘 깔아 놓고 있다.
주인이 없으면 보통 잠을 자지만 들쥐를 잡아 먹던 사냥 개 습성 때문에 조그만 소리에도 잘 짖어 무더운 한 여름에도 나갈 땐 항상 모든 집안의 문을 꼭꼭 닫고 나가야 한다.
집안에서 나는 늘 실내화를 신고 있어 그동안 낡아서 버린 실내화도 꽤나 많다.
혼자 사는 집에 실내화만 서너개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식탁 의자 다리에 두꺼운 천이나 테니스 공을 덧대고 뒤꿈치로 쿵쿵거리는 아저씨, 생각없이 뛰어 다니는 유쾌한 어린이들이 집안에서 실내화만 신어도 층간 소음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심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내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에 이웃에게 분노의 대상이 된다.

귀마개는 잘 때도 쓰고 집에서 일하게 될 때도 쓰고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조용한 내 집 하나 갖게 되기 전까지는 이 귀마개를 써야 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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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7 18:57

통신 기본요금에까지 부가세는 너무 했다.

 부가가치세는 재화나 용역이 생산되거나 유통되는 모든 거래단계에서 생기는 부가가치를 과세대상으로 하여 과세하는 간접세(間接稅)이다.
부가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으로는 기업이 지급하는 급료·지급이자·세금과공과·감가상각비 및 이윤 등을 합계하여 계산하는 가산법(加算法)과 기업의 재화와 용역 등의 매출액에서 기업의 재화와 용역 등의 매입액을 공제하여 계산하는 공제법(控除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부가가치세법에서의 부가가치는 공제법에 의하여 계산하고 있다.
따라서 부가가치세는 부가가치에 세율(稅率)을 곱하여 산출하게 되는데, 공제법의 원리에 의하면 부가가치세는 매출세액(賣出稅額)에서 매입세액(買入稅額)을 공제한 금액이 된다.
부가가치세의 일반적 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부가가치세는 일반소비세(一般消費稅)이다.
즉 부가가치세법상 면제된다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모든 재화와 용역의 소비에 대하여 과세된다.
따라서 실제담세자는 최종소비자인 것이다.
둘째, 부가가치세는 사업자조세의 징수를 대행해 주는 간접세(間接稅)이다.
부가가치세는 국가가 소비자로부터 직접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가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할 때 징수하여 일정기간 내에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이다.
셋째, 부가가치세는 부가가치(附加價値)에 대하여 과세하는 조세이다.
즉 부가가치세란 전(全)거래단계의 모든 사업자가 자기단계(自己段階)에서 창출한 부가가치에 대하여 부과·징수하는 세금이다.
이때의 부가가치는 공제법(控除法)에 의하여 계산한다.




이번 달 나의 통신 요금은 대략 이렇다.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나의 통신 요금은 기본료를 포함 30,982원이다.
부가가치세 3,098원은 기본요금에까지 세금을 적용한 금액이다.
기본요금은 내가 통신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이용하지 않아도 통신사에서 일방적으로 강제 징수하는 요금인데 여기에까지 세금을 붙이고 있다.
금액이 작다보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부당 세금 수익이다.

기본요금도 부당한데 거기에 부당한 세금까지 징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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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12:11

다시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문자를 보내 놓고 애써 다른 일들을 찾아 부산을 떤다.
그렇게 시간이 꾀 지난거 같은데 아직 답장이 없다.

10년 전,
27살의 나는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간의 내 삶에서 누적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알게 된건 하늘이 내게 그래도 살아보라는 희망같은 거였다.
내 심장은 내내 뛰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그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이 설렜다.

그 사람 또한 나만큼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너무 무기력했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살아가는 의욕은 점점 죽어가고 그 사람은 멀어져 갔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같은 고통의 세월은 길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도 써 봤지만 누굴 만나도 도무지 두근거림이 없었다.
그럴수록 내 주변에 좀 더 견고한 벽을 쌓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누군가 또 다가 올까봐 두려웠다.

7년만이였다.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죽은거 같았던 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젠 내게 감정은 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 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건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다.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방적이다.
나의 짝사랑.
내 머리는 더 애쓰지 말라하지만 내 심장은 그녀를 향해서만 달리고 있다.
나는 오늘도 하루종일 울리지 않는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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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6:01

LCD 모니터 강화유리 제거

가끔이지만 고객이 직접 작업실을 찾아올 때가 있다.
작업 설명을 하는데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찌르는 사람이 있다.
IT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이 손가락으로 자기 모니터를 찌르는 걸 보고 덤덤히 지켜보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를 바꾸면서 모니터도 하나 더 장만하기로 했다.
이번엔 기필고 강화유리를 끼워 고객들의 손가락으로부터 내 모니터를 지켜 내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이것은 모니터가 맞다.
거울이 아니다.
모니터에 비친 텔레비전 화면에 카메라 포커스가 맞춰질만큼 강화유리의 반사력은 대단했다.
요즘처럼 햇볕이 좋은 화창한 날이면 모니터 글씨를 볼 수 없을만큼 작업이 불가능하게 된다.
작은 빛도 반사 시키기 때문에 눈도 많이 피곤하다.

강화유리를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모니터 뒤의 나사를 모두 풀고 케이스를 열려고 시도하니 안된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유리와 케이스가 양면테이프로 고정 돼 있을 수 있다고 하니 A/S를 맞겨보라고 한다.
일단 포기하고 1주일을 다시 눈부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십여분을 모니터 케이스를 째려보고 있었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그것을 한참동안 노려보고 있는건 내 오랜 습관이였다.
그러다 문득 자동차 유리에서 성에를 제거할 때 쓰던 끌 칼이 생각났다.


아래부터 공략하니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유리와 케이스를 양면테이프로 고정시킨 건 아니였다.
아래로부터 좌우 번갈아가며 조금씩 위로 벌려갔다.
톡톡거리면서 케이스가 열린다.
너무 힘을 주면 끌 칼로 액정 모니터에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유리 좌우 양옆으로만 흰색 양면테이프로 고정 돼 있었다.

칼을 끼워 양면 테이프를 제거해 간다.
의외로 어렵지 않다.

드디어 유리가 분리 됐다.
고객으로부터 나의 모니터를 보호할 것이냐 내 눈을 보호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나는 내 눈을 선택했다.
이전까지 강화유리는 나에게 계륵이였다.

반사 되는 것이 없다.
모니터 답다.


유리를 제거한 공간에 유리 두깨만큼의 틈이 있지만 그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만큼 시야가 쾌적해 졌다.
강화유리는 컴퓨터를 험하게 다루는 초등학생이 있거나 PC방에서나 필요한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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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19:58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일하기가 싫어진다.


우울증이 무력감을 갖어온다고는 하는데 나도 그런 것일까.

어제 오늘 그런게 아니라 10여년 전 내가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늘 그랬던거 같다.
일을 해야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단 뉴스를 읽고 댓글을 단다.
카페에 들어가 출석체크를 하고 아고라에 가서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거나 사진을 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열어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와서는 다시 뉴스들을 클릭한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같은 페이지를 다시 리프래시 하면서 무의미한 클릭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청소를 하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반복.
해가 늬엇늬엇 넘어갈 쯤 일을 시작한다.
한시간 일하고 삼십분 땃진하기를 반복하다 밤이 되면 뉴스를 시청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뉴스를 읽는다.
그러다 잠깐 일을 했다가 밤늦은 오락프로를 보고 잠이 든다.
거의 10년을 이렇게 살아온거 같다.

무의미하게 웹서핑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일이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 작업 기한이 늦어져 의뢰인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의지가 약한 탓일 수도 있다.
아니란 걸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해야 될 일도 산더미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머리만 복잡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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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11:10

후보 너무 많다. 그래서 메모 했다.



머리가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는 후보가 너무 많다.
시장, 도지사는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 후보로 나섰다.
그 외, 의원이라든가 비례대표, 교육감 후보들은 딴 세상 사람들이다.
올해는 선거 홍보물도 투표 이틀전에서야 도착 했다.
안올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우선 인터넷에 들어가 각 후보들의 공약들을 살펴 봤다.
모든 후보를 살펴보는데 족히 반나절이 넘게 걸린 듯 하다.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니 공약 내용을 좀 더 꼼꼼히 살펴 봐야 했다.
세상 좀 살다보니 그들의 경력이란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울 수 있는 꺼리에 불과하는 걸 터득하게 됐다.
친구는 관상을 본다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무상급식은 단골 과제였고 인성교육과 기초교육, 사교육비 절감, 도내 고교평준화에 대해 언급한 후보에 마음이 쏠린다.
내가 선택한 교육감이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내 조카들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나름 신중했다.

그외 도, 시 의원들의 공약도 꼼꼼히 살펴 봤다.
어떤 후보의 홈페이지는 내용이 너무 부실해 그 사람을 알기엔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아쉽다.
나같은 사람에겐 친밀감 있게 홈페이지가 꾸며지고 커뮤니티가 활성화 된 후보에게 마음이 간다.

가장 관심이 가는 도지사, 시장 선출에는 오히려 고민이 길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지하던 후보 모두 이번 도지사, 시장 후보로 나섰다.
그들이 어린시절 부터 이 고장에서 어떻게 성장했고 타지에 가서는 어떤 일을 했고 정치를 위해 낙향(?) 했을 땐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항시 지역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후보가 수십명이고 선출 해야 할 사람도 8명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름을 까먹을 수도 있고 누가 누군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포스트잇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내일 요것을 잊어버리고 투표장에 간다면 나는 아마도 아는 문제도 찍기로 푸는 멍청한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고민,
강산이 푸른데 투표를 일찍 끝내고 산을 갈까 낚시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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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2 19:09

10년 사용한 LGT에서 KTF로 갈아타기. 마음이 허전한 이유.


군대를 다녀오니 당연 동기들보다 졸업이 늦었다.
1998년,
학창시절 마음에 두던 친구가 LG전자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소문으로 연락은 닿았지만 이미 매우 동떨어진 생활공간에 놓여지게 됐고 같은 학교를 입학했다는 공감대 말고는 없었다.

겨우 2년남짓 지났을 뿐인데 전역하고 나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누구나 인터넷을 하게 됐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첩보다 작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나도 저거 하나 있어야 겠다 싶어 통신사를 정하던 중 은연 중 LGT에 마음이 갔다.
그 후로 한동안 나의 전자 제품은 모두 LG 상표를 달고 있었다.

중간에 여자친구와 커플 요금을 해야 했을 때 잠깐 KTF로 옮겼던 적을 빼고는 10년을 넘게 LGT만 사용해 왔다.
2000년이였던가, 친구들과 설악산 등반을 했을 때 다들 대청봉 꼭대기에서 전화기를 들고 섰다.
나는 대청봉에 서서 구름을 발 아래에 두고 속초 앞바다를 바라보는 감격을 전해줄 마땅한 사람이 없었지만 친구들은 신호를 잡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 뛰며 하늘에 기원 하듯 전화기를 든 손을 하늘로 향해 있었다.
혼자 아무것도 않던 내게 친구 하나가 다가와 전화기 신호 잡히는지 보잖다.
안테가 떠 있었다.
당시에 친구들은 센스있는 젊은 사람들의 통신 아이콘이였던 어느 통신사에 가입 돼 있었다.
친구들은 내 전화기를 돌려쓰기 시작 했다.
통신사 때문이였는지 전화기 성능 때문이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후로 나의 LGT에 대한 무한 신뢰는 뿌리 튼튼하게 자리 잡게 됐다.

꼬박 십년을 써오던 LGT를 버리고 KTF로 옮겼다.
번호이동 동의 메시지가 왔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얼마 후 전화기에서 안테나가 사라졌다.
그런데 마음 한켠이 무겁다.
이깟 통신사 옮기는게 뭐라고 좀 더 좋은 서비스 주겠다고 해서 옮긴건데 오랜 친구와 헤어진 듯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내가 통신사를 바꾸려고 결정한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이든 하나를 결정하면 왠만해서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다.
인터넷 회선도 한 회사에서 12년을 썼다.
자꾸 끊기고 속도도 느리고 10년을 넘게 썼다고 신규 회원에게 주는 그런 사은품도 없었다.
장기 고객이라며 VIP 고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지 않아도 미련 스럽게 남아 있는 그런 사용자였다.
인터넷과 케이블TV를 함께 이용하면서 케이블TV를 해제하고 인터넷은 휴면 서비스를 받게 됐다.
장기 고객이니 잘 해주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케이블TV를 재 가입할 때는 부가세별도인 6만원의 가입비를 내야하고 인터넷 역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안내를 가장 먼저 받게 됐다.
10년, 20년을 썼어도 고마운 고객이 되기는 커녕 서비스 변경이나 해지를 하게 되면 바로 배신자가 되는거였다.
오히려 2, 3년 정기적으로 통신사를 옮겨다니며 여러 혜택을 받는 가입자들의 시선에 나는 미련스럽고 똑똑하지 못한 소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계기로 나는 10년 넘게 지켜오던 고집을 버리고 남들처럼 현명한(?) 소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 휴대전화 통신사를 바꿨다.
곧 인터넷과 TV도 바꿀 예정이다.
최신폰에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됐지만 막상 안테나가 꺼져버린 내 휴대폰의 시스템을 초기화 하고 전원을 끄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 명의로 KTF에 가입된 어머니의 휴대폰을 LGT로 옮기기로 했다.
내 딴엔 이것도 10년 의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란 생각이 든다.
나는 참 세상 어설프게 사는거 같다.
내가 이런다고 LGT가 나에 대해 뭘 생각해 주겠냔 말이다.
웃기다.
나는 기업들에게 고객이 아니고 그냥 객일 뿐이다.
나중에 몇년이 지나고 KTF에서 SKT로 옮길 땐 기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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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0 19:27

나는 잘 살고 있는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가?


이번달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가 왔다.
청구서를 이메일로 신청하니 문자 12건이 무료다.
자세한 내역을 보니 지난 달 3건의 문자를 썼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휴대폰에서 문자를 보낼 일은 거의 없는데 지난달은 3건이나 보냈다.
LGT 홈페이지에서는 50건이 무료고 네이트온에서는 10건이 무료다.
내 명의로 된 어머니 휴대폰까지 더하면 120건이 무료다.
그러나 한달에 문자 12건을 못보낸다.

문자가 그러할진데 전화는 더더욱 쓸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쓸 일이 없는건지, 내가 안쓰는 건지는 모르겠다.
캐피탈, 보험, 도박, 통신사 관계자들이 나의 베프다.
얼마나 친한지 200건의 문자함이 대부분 이들의 문자로 차 있다.
지난 달엔 그래도 19,000원은 나왔는데 이번엔 3천원이 덜 나왔다.

전화요금은 대부분 2만원을 넘지 않는다.
인터넷전화를 함게 쓰지만 전화요금보다 충전할 때 드는 전기요금이 더 많이 나올판이다.
휴대폰 통화료가 반이고 같은 통신사끼리는 통화료 무료라기에 기본요금 2천원을 더 내고 요금할인제로 가입했다가 3개월만에 일반 상품으로 전환 했다.
휴대전화 사용한지는 13년째가 되지만 가장 많이 나왔던 요금이 3만5천원 정도 되는거 같다.
옛날 호출기(삐삐) 사용할 때 기본요금이 1만5천원이였다.
통신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혼자 있을 때가 좋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타지 않는게 아니다.
누구보다 외롭다.
며칠씩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 날도 많다.
전화기엔 200여명의 전화번호가 저장 돼 있다.
어머니 말고는 마땅히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은 없다.
혼자 사는 나이 많은 아들이 여자친구도 없어 어머니한테만 전화 한다고 한 소리 들은 후부터는 어머니께 전화하는 것도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가족들보다 통닭집에 더 많이 전화하게 된다.

부담 스럽다.
지인들에게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전화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선약이 있으면 어쩌나, 별로 생각 없는데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내키지 않는 약속을 잡는건 아닌가 생각이 많아진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만나자는 제안에 거절을 못하고 나갔던 적이 많다.
내가 항상 술이 마시고 싶은건 아니다.
그래도 이번에 거절하면 다음엔 연락을 안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사람들과의 만남이 부담 스러워지고 퇴근 무렵이 되면 오늘 저녁은 혹시라도 누가 만나자고 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가 전화를 할까? 만나자고 하면 밥이나 먹을까? 술마시자고 할 때 거절하면 실망하지 않을까?
돈이 없는데 비싼 식당 가자고 하면 모른척 얻어 먹을까? 카드 긁어야 되나?
아무도 전화 안하면 혼자 뭐하지?
비도 오는데 파전이라도 먹자고 전화하면 상대도 내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될까? 민폐가 될까?
...
나의 통신요 절약 비결은 궁극의 소심함인거 같다.

전화요금 8~9만원이 나오는 사람도 있다던데 부업으로 텔레마케터 하는 사람일까?
나의 사회생활은 실패인거 같다.
인생은 굴곡이 있다던데 내 인생에도 꽃피는 날이 있다면 그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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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18:00

이런 창업 어떨까. 자동차 DIY 샵.


1994년 7월 28일.
드디어 자동차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60년만에 찾아온 무더위 속에서 학원을 다니며 운전을 배웠다.
면허가 없을 때도 간혹 시골 길에서 매형차를 끌고 다녔지만 시험용 운전은 조금 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받은 한 달 월급이 운전면허 학원 수강료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내 생에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만났으니 보름만에 면허를 따고 나머지 2개월치 수강료를 돌려 받지 못했어도 그때의 기억은 좋기만 하다.

중고차를 사서 끌고 다녔다.
에어컨도 안되는 10년된 중고차였지만 나의 첫차였고 애지중지 관리 했다.
고등학교를 기계과로 다닌 덕에 기계 장치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간단한 경정비는 직접 하고 장비가 필요한 수리는 정비소에 가서 어느 부품을 교환 해야 한다며 콕집어서 말하니 정비소의 불필요한 바가지는 피할 수 있었다.

얼마전까지 16년이 된 차를 끌고 다니다 다시 중고차를 구입했다.
8년된 SM5다.
지금까지 내가 타고 다니던 차들에 비하면 매우 훌륭한 차다.
이전 주인이 튜닝을 해서 차체가 낮아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척추가 곤두서리만치 긴장을 히야 하는 것 말고는 마음에 들었다.
며칠 끌고 다녀보니 차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트렁크 쪽이다.
카페에 가입해 증상을 물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 지식인 검색도 해 봤지만 마땅한 해결 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뒷 바퀴쪽 켈리퍼를 의심해 보라는 답변이 나를 긴장 시켰다.
단가가 나가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 쪽은 아니길 바라며 나는 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분석하기 시작 했다.
분명 공명이 생기는게 트렁크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것이 조수석 하부에서도 소리가 났다.

차를 리프트로 들어보면 확답을 얻을 수 있었을거 같은데 정비소에 가기 전까지는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어려운 형편에 견적이라도 많이 나온다면 난감 했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해결 됐다.
땅 바닦에 업드려 차 밑을 봤다.
배기관.
부싱이 떨어져 나가 그 것이 덜렁거리는 걸 확인 했다.
차체를 들어 올릴 수 없으니 낑낑거리며 철사로 배기관을 차체에 묶어 고정 시켰다.
덜그러 거리는 소리가 깔끔히 해결 됐다.
차 밑을 한 번만 볼 수 있었다면 고민할 문제가 아니였다.

타이어 교환이나 배선 교체, 엔진오일 교환 등 간단한 경정비는 직접 가능하다.
조향이나 브레이크 관련 정비는 당연히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지만 간단한 정비나 튜닝은 차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가능하다.
단지 그것을 작업하기 위한 공구가 없기 때문에 정비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
점화플러그를 교체 하는 작업은 10분도 걸리지 않는 작업 이지만 가정에서 쓰는 일반 복스로는 플러그를 뺄 수 없어서 정비소를 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정비소에서 시간당 얼마를 주고 정비소의 장비와 공구를 이용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 튜닝샵이라고 간혹 있긴 하지만 일명 뽐뿌(자동차 외관을 뽐 내기 위해 요란하게 튜닝하거나 장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고가의 수리 견적이 아니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리프트, 절단기, 용접 등 자격증이 있어야만 다룰 수 있는 장비들은 주인이 직접 공임을 받고 작업을 해 주고 나머지 경정비에 관한건 정비소 안에 코너를 만들어 고객이 직접 이용 할 수 있게 하고 지식도 공유해 주고 하는 정비소가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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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1:20

사업 하겠다는 사람이 전화도 하나 못 받으면 어쩌자는 건지요.


오늘 아침부터 내가 들은 말이다.

대략 석달전 모 업체와 프로그램 개발 계약을 했다.
올해 부터는 프로그램 주문제작은 안하기로 했던건데 마침 돈이 필요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계약했다.

개발 기간은 3개월을 주겠단다.
프로그램은 대략 30여개가 된다.
업체에서 서버를 셋팅하면 내가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된다.
그런데 3개월 중 서버 셋팅에 2개월을 써버렸다.
큐브리드라는 생소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작업 해야 하는거라 작업 할 수 있는 임시 서버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3개월 시간을 준다고 한게 결국 1개월만에 해야 했다.
부지런 떤다고 하긴 했는데 1개월로는 무리였다.
오늘까지 3주를 더 써서 겨우 마무리 했다.

프로그램 중에 수정 사항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나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평소에도 워낙 전화가 안오기 때문에 신경을 안쓰고 있었는데 휴대전화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녁 때가 되서야 휴대폰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전날 잃어 버린거 일수도 있고 그 훨씬 전에 잃어 버린 거일 수도 있다.
분실 신고를 하고 날이 밝으면 임대폰을 받으러 갈 계획이였다.

아침부터 사무실로 전화가 온다.
주로 메일 상담이라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도 오랜만이다.
번호가 같이 일하는 업체다.
웹디자이너다.

"여보세요."
"...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전화를 그렇게 안받으면 어쩌자는건지 ..."
"..."

황당했다.
나는 분명 프리랜서 계약을 한건데 평소에도 윗 사람처럼 굴려고하는데 불편했는데 이제 갓 사회 생활 시작한 여직원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남들이 사회생활 힘들다는게 이런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의가 없었다.
사무실 전화 번호도 알고 있었고 메일 주소도 알고 있었으면서 휴대전화 못 받았다고 아침부터 전화해서 부하직원 훈계하듯 한다.
나는 한 번도 그들을 고용주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들 엮시 내가 아니면 다른 개발자를 구하겠지만 나 역시 이 일이 아니면 다른 일이 밀려 있다.
나 엮시 이 번 일로 다른 일을 못해 손해가 크다.
자기들 시간 약속 못지킨건 생각 않고 내가 3주 오버한거만 부각 시키려고 한다.

그들은 돈을 쥔 사람이고 나는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데서 수식관계가 형성되는가보다.
이번 일을 하면서 참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다짐을 했던거지만 다시는 하청거래, 개인거래 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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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17:17

33만원짜리 93년 쏘2, 1억 대물배상 보험에 가입하다.


▲ 93년 9월 등록 된 쏘나타2


카드 값 150만원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타고 다니던 엑센트를 팔았다.
그리고 근 2년을 차 없이 다녔다.
그러다 3년전, 여자친구가 근무하던 자동차 정비 회사에 신차를 구입하면서 처분하려는 차가 있다기에 45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접촉 사고로 오른쪽 휀다가 없고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살짝 부딛힌 사고는 아닌 듯 했다.
차 값보다 더한 수리비를 주고 차를 말끔히 고쳐 3년동안 잘 타고 있다.
힘은 좀 딸리지만 난폭운전이나 과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연비도 그럭저럭 잘 나오는 편이다.
한가지 배가 아픈게 있다면 차 값에 해당하는 돈이 매년 보험료로 나간다.

▲ 오늘 가입한 종합보험


보험도 만기가 되어가고 차의 운명도 만기가 되어 온다.
작년 여름엔 차가 도로 한 복판에서 멈추는 바람에 견인이란 걸 해봤다.
에어컨도 안되고 타이어도 교환해야 한다.
타이밍 벨트도 이젠 힘겨운 소리를 낸다.
클러치도 디스크가 다 됐는지 짧은 다리로 깊히 꾹 눌러줘야 말을 듣는다.
신호대기 좀 하려고 차를 멈추면 RPM 800을 맞추기 위해 힘겨운 몸부림을 친다.
대쉬보드의 떨림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공업사에 견적을 물어보니 백여만원이 나온다.

내 차는 오늘내일 하는데 자차 보험료의 4배를 더 주고 대물배상 1억에 가입했다.
어느날 부턴가 원주에도 외제차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처음엔 차가 다 똑같은 차지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운전 하고 다녔다.

▲ 인터넷에서 이런 사진들을 볼 때마다 경각심이 생긴다.


인터넷을 다니다보면 외제차와 사고낸 운전자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여진다.
몇번은 저건 남 일이야라며 가볍게 보고 넘겼으나 도로에서 실제로 외제차 근처를 다닐 때 만약 저차와 접촉 사고가 나면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원주에서 마이바흐와 사고가 날 확율은 내게 없다.
흔하게 보이는 아우디, 벤츠, BMW, 푸조를 내가 들이 박았을 때는?
보상액 3천만원을 초과 해 3천1백만원의 견적이 나오더라도 내게 1백만원은 큰 돈이다.
대물배상액 1억을 한 이유는 실제 배상액 1억 때문이 아니라 3천 1백만원 때문이다.
1백만원도 힘겹기 때문이다.
저런 차들이 내차를 박았을 땐 내 차는 폐차 시키면 된다.
외제차 끌 정도의 재력을 갖춘 사람이면 하루 술값 정도 보상해 주면 되지만 입장이 바뀌어 내가 가해자가 되면 난 그 일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에어컨도 안나오는 15년 된 차를 끌고 다니지만 그래도 보험이라도 가입할 능력은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요즘 이 차를 버려야 되나 수리 해야 되나 고민이 많다.
그동안 내 발이 되어 주면서 돈도 벌 수 있게 해주고 작년에 어머니가 갑자기 수술 받게 됐을 때 병원에 모시고 다닐 수 있게 해주었는데 나는 요즘 자꾸 다른 차에 시선이 간다.
못 됐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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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5 14:37

내 컴퓨터는 툴바와 전쟁중이다.

▲ 어느집, 어느 사무실을 가든 브라우저에 이런 정도의 툴바는 기본으로 설치 돼 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선배가 하루는 업무용으로 쓰는 컴퓨터에서 계속 에러나 생긴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선배는 5년전 내가 조립해줬던 컴퓨터를 아직도 쓰고 있다.
게임을 많이하는 선배를 위해 3D 게임에 적합한 사양으로 조립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동영상 하나 제대로 보기 힘들만큼 고물 컴퓨터가 됐다.
에러는 플래시 플레이어에서 생긴거였고 재설치하니 이상 없이 잘 돌아간다.
며칠을 고민하던 문제를 5분도 안되서 해결하는 걸 보고는 이런저런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그 중 가장 큰 고충은 컴퓨터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일단 불필요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삭제하고 임시파일, 레지스트리를 정리하고 바탕화면에는 자주 사용하는 아이콘 몇개만 남겨두고 모두 지웠다.
바탕화면 이미지도 없애고 까만화면으로 바꿨다.
그리고 브라우저을 열어보니 네 개 정도의 툴바가 설치 돼 있었다.
모두 삭제하고 탐색기로 들어가 제어판의 프로그램 관리자가 남겨 놓은 프로그램 찌꺼기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몇가지 작업을 하고나니 확연한 속도차이를 보인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웹서핑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아이콘들이 바탕화면에 설치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컴퓨터 초보들은 그 아이콘을 삭제하지 못한다.
삭제 해봐야 부팅하면 다시 생기니 악성코드나 바이러스 만큼이나 골치 아프다.
어느 집의 컴퓨터를 보더라도 사이트 바로가기 아이콘이 바탕화면에 즐비하게 깔린 걸 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악질은 **Go** 사이트 아이콘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툴바가 극성이다.
하나 정도는 설치해 놓으면 해당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서비스를 툴바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엔 툴바에서 바이러스, 악성코드 검사까지 무료로 재공하는 것도 있으니 잘만 선택하면 아주 유용하다.
문제는 이 툴바들이 내 허락 없이, 혹은 눈 깜짝할 사이 나도 모르게 설치 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툴바는 포털사이트에 방문할 때 설치를 강요했으나 지금은 포털사이트 뿐만 아니라 백신, 문서뷰어, 동영상 플레이어 등을 설치 할 때도 툴바를 설치한다.
즉 너나 없이 툴바를 만들고 사용자 컴퓨터에 자신의 툴바를 설치하도록 유도한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김 없이 프로그램 하나 설치에 툴바도 하나 추가하게 된다.
극성도 이런 극성이 없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툴바 하나가 추가 될 때마다 브라우저의 실행속도가 느려 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005년에 조립한 내 컴퓨터도 지금은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해가 될만한 것들로부터 컴퓨터를 지켜 내느라 항상 조심하고 있다.
툴바 뿐만 아니라 쓸 데없는 PnP 프로그램들 까지도 발도 들이지 못하게 철벽 방어를 하고 있다.

"툴바 클리너"라고 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악성코드 제거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아군인척 들어와 슬그머니 악성코드를 남겨 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이 많으니 이 또한 안심하고 다 믿을 수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동으로 삭제하는 것 밖에 없다.

제어판 -> 프로그램 추가/삭제 -> 툴바 프로그램 삭제
그리고 레지스트리 정리.

툴바 위에서 팝업 메뉴 불러 툴바 사용 안함을 체크해서 브라우저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건 손바닦으로 하늘을 가리는 겪이다.
제어판에 들어가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툴바 하나만 남겨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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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16:57

메신저는 연애 중. 나는 고민 중.

▲ 나의 메신저는 지금 뜨겁다.


머리는 아프고 일은 하기 싫고 딴 짓거리 찾다가 우연히 메신저에 등록한 사람들을 보게 됐다.
대략 이런 모습이다.
나도 한 때 이런 때가 있었지하고 넘기기엔 속이 아프다.
하~*

작년 이맘 때였다.
설날도 되고 해서 집에 갔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오랜 수다를 떨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 친구도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나보다 조금 더 오래 됐다.
나이는 계속 차고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시는데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란다.
그 후로 1년째 그 친구는 전화하면 항상 여자 얘기를 한다.
다른 친구는 벌써 학부형이 됐으니 조바심이 날만도 하다.
1년전 이 때 그 친구가 말하길 지인이 중국에 사람이 있는데 생각 있으면 소개를 시켜 준다고 했단다.
가을이면 중국에 갔다 올거라더니 결론은 지금도 혼자다.
업자에게 낚였던 것이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서울 근교에 작은 집도 있고 대출도 이제 다 갚았다.
종합병원의 시설관리 업무를 하는 회사니 직장도 안정적이다.
몇 번 선자리가 들어오긴 했는데 번번히 실패한다.
아무래도 키 때문인거 같다.
우리는 키가 작다.

여자친구가 없은지 나도 1년하고도 반이 되간다.
이렇게 오래 여자친구가 없었던 적은 아마도 군대 있을 때 빼고는 처음인 듯 하다.
마지막 여자친구와 헤어지고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처음보는 택시 기사, 아랫집 할머니, 미용실 아주머니, 업무적으로 만난 거래처 사장님들 나를 보면 선한번 보라, 단골 손님이 있는데 만나보라 한다.
혼자 인지 오래이다보니 아무래도 측은해 보이는가 보다.
딱 한번 여자친구가 생길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고민 끝에 조금 더 오래 혼자 있기로 했다.
3년, 4년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이유는 나의 무능함과 갖은거 없는 빈털털이라는 현실이였다.
그러나 그런 나의 모습에 개의치 않았던 착한 그들을 떠나 보낸건 오히려 나였다.
자신이 없었다.

빚을 갚아야 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4천만원 가량의 빚을 지게 됐고 그것이 5천, 6천이 되는건 순식간이였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빚으로 시작 됐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처지가 괴로웠고 연애는 사치였다.
여자 친구가 있을 때는 혹시나 나를 떠날까 하는 마음에 집착이 생겨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여자 친구가 없을 때는 외로움에 일보다 술을 더 가까이 했다.
내가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한 이유는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이제 나는 제로포인트가 됐다.
지금 나는 하루 12시간씩 일을 한다.
이젠 돈을 모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더 오래 혼자 있어야 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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